국내 탄소배출권 시장과 유럽 ETS 시장 비교 분석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직면하면서,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탄소배출권 거래제(Emissions Trading System, ETS)’가 있으며, 이는 시장 원리를 기반으로 탄소 감축 비용을 최소화하고, 기업에게 감축 동기를 제공하는 제도다. 특히 유럽연합(EU)은 2005년 세계 최초로 ETS를 도입해 전 세계 탄소시장 트렌드를 주도해 왔고, 한국은 2015년 아시아 최초로 국가 단위 배출권 거래제(K-ETS)를 시행하며 아시아 대표 온실가스 감축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2025년 현재, EU ETS와 K-ETS는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된 탄소시장 중 두 곳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두 제도는 외형상 유사해 보이지만, 운영 방식, 시장 규모, 거래 유동성, 가격 안정성, 기업 참여도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유럽 ETS는 글로벌 배출권 기준을 만들 정도로 성숙한 반면, 한국의 ETS는 여전히 발전 중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본 글에서는 국내(K-ETS)와 유럽(EU ETS)의 탄소배출권 시장을 구조적으로 비교하고, 각 시장의 특성과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한국 기업과 투자자, 정책 입안자가 참고할 수 있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탄소배출권 시장 구조 및 제도 운영 방식의 차이점
ETS의 핵심은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상한선을 설정하고, 이를 시장에서 거래 가능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마다 제도 설계와 운영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 배출권 할당 방식
- EU ETS는 초기에는 무상할당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80% 이상을 경매 방식으로 공급한다. 이로 인해 배출권은 시장 경쟁을 통해 확보되어야 하며, 기업은 감축 성과에 따른 비용 차별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배출권을 실질적인 경제 자산으로 만들며, 가격 신호를 강화하는 구조다.
- K-ETS(한국)는 아직까지 무상할당 비중이 90% 내외로 높다. 특히 제조업, 발전업, 수송업 등 산업군 대부분이 탄소중립 전환 여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보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부 기업군만이 유상할당 대상이며, 아직은 시장가격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편이다.
- 시장 규모 및 배출 커버리지
- EU ETS는 2025년 현재 27개국 11,000여 개 사업장을 포함하며, 전체 EU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5% 이상을 커버한다. 커버 대상에는 발전소, 제조업, 항공사, 건설업 등이 포함되며, 2027년부터는 해운업, 건물, 도로교통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 K-ETS는 700여 개 기업만 포함하고 있으며, 국가 전체 배출량 중 약 70%만을 제도 내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 외의 중소기업, 민간, 농업, 소상공인 등은 대부분 제도 밖에 존재하며, 외부사업이나 탄소포인트제로만 간접 참여 가능하다.
- 배출권 유형 및 거래 시스템
- EU는 EU Allowance(EUA)라는 단일 기준을 사용하며, 국제 거래가 가능한 수준의 표준화된 크레디트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 한국은 KAU(배출권), KCU(감축실적), KOC(자발적 상쇄용 크레딧) 등 다양한 형태로 구분되어 있으며, 거래소와 별도로 기업 간 P2P 거래도 가능하나, 유동성이 낮은 편이다.
탄소배출권 가격, 유동성, 거래 활성화 수준 비교
탄소배출권 시장의 실질적인 성숙도는 가격 형성 구조, 거래량, 시장 참여자 다변성 등에서 드러난다. 이 측면에서 유럽과 한국의 차이는 특히 뚜렷하다.
- 가격 수준
- EU ETS (EUA):
2025년 기준, 톤당 85~100유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이는 한화 기준 130,000~150,000원에 해당한다. 글로벌 투자기관이 EUA를 투자자산으로 편입할 정도로 가치가 안정적이다.
- K-ETS (KAU25):
2025년 현재, 톤당 48,000~52,000원에서 거래되고 있다. 과거 대비 상승세를 보이지만, 유럽과 비교하면 가격이 절반 이하 수준이며, 배출권의 희소성이나 자산가치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다.
- 거래 유동성과 참여자 다양성
- EU ETS는 다국적 기업, 투자은행, 헤지펀드, 탄소펀드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일일 거래량이 수천만 톤에 달하는 대규모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ICE 선물시장, EEX 현물시장 등 다양한 거래 플랫폼이 존재한다.
- K-ETS는 대부분 기업 간 수요·공급 거래 위주이며, 개인 참여는 불가능하고 ETF나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만 가능하다. 하루 거래량이 수천 톤 이하로 낮고, 일부 거래는 거래소 밖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 투자 수단의 다양성
- 유럽은 배출권 선물, 옵션, 구조화 상품, 탄소펀드 등 다양한 투자 수단이 존재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탄소세와 배출권 제도를 통합하여 금융시장과 직접 연동한다.
- 한국은 ETF 상품이 3종 정도로 제한적이며,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유럽 ETS를 추종하는 간접 ETF에 투자하는 구조다.
탄소배출권 정책 방향 및 향후 전망: 한국의 과제와 기회는 무엇인가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은 유럽과 비교하면 아직은 성장 초기 단계에 있으며, 제도적인 완성도와 시장 참여 유인, 글로벌 연계성 측면에서 발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동시에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 무상할당 축소 및 유상경매 확대
2026년부터 시작될 제5차 계획기간(K-ETS 2.0)에서는 정부가 무상할당 비중을 줄이고 유상경매를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조치는 배출권을 단순한 보조수단이 아닌 실질적인 경제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며, 기업의 감축 인센티브를 높이고, 시장가격의 신뢰도도 함께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 개인 참여 확대와 디지털 크레딧 시스템
현재 한국은 배출권 거래에서 개인의 직접 참여가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2026년까지 개인 탄소계좌제와 탄소 절감 실적의 디지털 크레디트화를 추진 중이며, 이를 통해 향후 소규모 감축 실적도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 국제 연계 및 통합 거래소 가능성
K-ETS는 현재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EU ETS, 중국 ETS, 일본의 탄소시장 등과 연계된 통합 배출권 거래시장 구축이 필요하다. 이는 거래 유동성을 높이고, 국내 배출권의 국제 가격과 연동성을 강화함으로써 한국 배출권의 자산가치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기반이 될 수 있다.
- 중소기업의 시장 진입 확대
EU는 중소기업도 감축 실적을 인정받아 소규모 상쇄 거래(Voluntary Market)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중소기업이 배출권을 보유하거나 매도하기 위한 구조가 제한적이다. 외부사업 제도를 통해 KCU를 발급받는 사례는 늘고 있지만, 더 많은 기업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인증 절차 간소화와 정보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