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시장에서 AI 기술의 활용 가능성과 한계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권 시장이 확대되면서, 이 복잡한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기술로 인공지능(AI)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과 배출권 할당, 거래까지 대부분 수작업이나 정적 데이터 기반으로 운영되었지만, 오늘날에는 AI 기반의 데이터 분석과 예측 기술이 시장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특히 한국형 배출권 거래제(K-ETS)의 복잡한 구조 안에서, AI는 배출량 예측, 시장 수급 조절, 리스크 분석, 가격 예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도입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니며, AI 기술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윤리적, 법적,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탄소배출권 시장 내에서 인공지능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어떤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탄소배출량 예측을 위한 AI의 역할과 성과
기업이나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배출량 예측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AI는 과거 배출 데이터를 학습하고, 생산량, 에너지 소비량, 계절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예측치를 도출한다. 특히 제조업, 발전 산업처럼 배출량 편차가 큰 분야에서는 정적인 예측 모델보다 AI가 훨씬 정확한 예측을 제공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일부 대기업은 배출권 의무 이행 시기를 예측하고, 시장 가격이 낮을 때 선제적으로 구매하기 위해 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날씨 변화, 국제 유가, 산업 생산 지표 등을 포함한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탄소배출권 가격 변동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활용된다. AI가 제공하는 이 예측력은 단순한 편의성 차원이 아니라, 수천만 원 단위의 비용 절감과 직결되기 때문에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 전략 수립에 활용되는 AI 기술
탄소배출권은 단순한 환경 규제 수단을 넘어서, 이제는 하나의 투자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에 따라 AI는 거래소(KRX)에서의 실시간 가격 변동을 분석하고, 최적의 거래 시점을 제시하는 알고리즘 기반의 전략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머신러닝 기반의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스템은 과거 수천 건의 거래 패턴과 매수/매도 타이밍을 학습해 실시간 매매 전략을 제시한다.
일부 금융사와 에너지 전문 컨설팅 기업은 이미 이런 자동화 거래 시스템을 개발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배출권 시장이 더 유동화되면 개인 투자자도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 한국의 배출권 시장은 유럽 ETS(Emission Trading Scheme)에 비해 거래량이 적고, 유동성이 낮아 AI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제한적인 점은 분명한 현실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의 도입이 불러온 법적·윤리적 문제들
AI가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와 규제 공백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첫째로는 예측 알고리즘의 불투명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AI가 왜 특정 시점에 거래를 추천했는지, 그 결과 누가 이득을 봤는지에 대한 투명한 설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AI의 판단에 따라 정부 기관이 기업에 배출권 할당량을 조정할 경우, ‘알고리즘에 의해 정책이 결정됐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또한, 기업 간 정보 격차도 문제다. AI 기술을 도입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정밀한 예측과 전략으로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수작업이나 공공 데이터에 의존해야 하며, 이로 인해 배출권 거래의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더 나아가, AI가 배출량 자체를 조작하거나 축소 계산하는 데 활용될 경우, 국제 신뢰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나온다.
향후 탄소배출권 시장 내 AI 기술의 진화 방향
AI는 단순한 데이터 분석 도구를 넘어, 탄소중립 시대의 전략적 파트너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에는 배출량뿐 아니라, 기업의 ESG 평가, 공급망 내 탄소 배출량 추적, 글로벌 배출권 시장 간 가격 차이 분석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합적으로 판단하는 복합형 AI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특정 기업이 공급망 내 탄소를 줄일 경우 어떤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까지 자동으로 판단하고 시뮬레이션하는 AI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도화된 시스템이 실제로 기능하려면, 탄탄한 데이터 기반과 명확한 법적 프레임워크가 전제되어야 한다. 정부는 AI를 활용한 배출권 관련 시스템에 대해 인증 제도나 기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하며, 기술 남용을 막기 위한 법적 감시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단기적인 효율성에만 집중하기보다, AI 기술이 궁극적으로 시장 신뢰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