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탄소배출 감축 실적 보고 시 겪는 행정 문제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와 관련 보고 체계에 점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특히 탄소배출권 거래제(K-ETS), 목표관리제, 자발적 감축 인증제도 등에 참여하거나 연계되는 중소기업들은 감축 실적을 공식적으로 보고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행정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전담 인력이나 시스템이 부족하고, 관련 법령 및 보고 양식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이로 인해 보고 누락, 오류, 일정 지연 등의 문제가 반복되며, 탄소 감축 노력이 실제 제도적 혜택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중소기업이 탄소배출 감축 실적을 보고할 때 겪는 주요 행정적 문제와 그 원인을 분석하고, 실질적인 해결책과 정책적 개선 방향을 제안한다.
보고 시스템 접근성의 구조적 한계
가장 큰 문제는 중소기업이 감축 실적을 공식적으로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정부에 보고하려면 대부분의 경우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 시스템(GIR)’이나 ‘온실가스 종합정보센터 플랫폼’에 접속하여 복잡한 양식을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대기업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중소기업이 직관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고, 데이터 입력 항목 또한 지나치게 많거나 전문적인 용어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LED 조명 교체나 공조 설비 개선 등의 감축 활동조차 정확한 에너지 절감량 계산식, 배출계수, 기준선 설정 등 전문적 수치를 요구받는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이를 계산할 수 있는 내부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외부 컨설팅 비용을 감당하기에도 여력이 부족하다. 이처럼 제도 참여를 원해도 절차적 장벽이 너무 높아 실제 감축 실적이 ‘인증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또한 보고서 작성 이후에도 행정기관의 승인 절차는 수개월이 소요되며, 그 사이 담당자 변경, 사업장 폐업, 자료 손실 등의 이유로 보고 절차가 중단되거나 무효 처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행정용어와 보고 기준의 복잡성
중소기업이 감축 실적 보고 과정에서 겪는 두 번째 큰 문제는 보고 기준의 지나친 복잡성과 행정용어의 난해함이다. 정부의 감축 실적 보고 양식은 대부분 환경공학, 에너지공학, 회계지식이 혼합된 전문 영역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준선(BAU) 설정’, ‘활동자료 계량화’, ‘배출계수 적용 방식’ 등 일반 기업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특히 자발적 감축 실적(VE: Voluntary Emission Reduction) 보고 시에는 감축 활동의 사전성, 추가성, 정량성 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동일한 활동을 보고하더라도 심사자에 따라 승인 여부가 갈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주관성은 중소기업의 제도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며, 적극적인 참여를 막는 장벽이 된다.
또한 보고 기준이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다. 감축 실적 보고에 사용되는 방법론은 매년 업데이트되거나 일부는 폐기되기도 하는데, 변경 사실이 중소기업에 실시간으로 공유되지 않으며, 최신 버전을 찾기도 어렵다. 결국 중소기업은 잘못된 방식으로 보고하거나, 보고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행정 처리 지연과 피드백 부족
감축 실적 보고 후 실제로 인증을 받기까지의 시간과 피드백의 부족도 중소기업의 큰 애로사항이다. 실적 보고 후 검증기관의 실사, 환경공단의 기술 검토, 환경부의 최종 승인까지 최소 수개월이 걸리며, 이 과정에서 피드백이 거의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보고서를 제출한 후 오류가 있거나 자료가 미비한 경우, 그 사실이 ‘반려’라는 결과로만 통보되고,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재작성만 요구받는 일이 흔하다. 이러한 방식은 보고 경험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 개선 학습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시스템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킨다.
또한 일부 지방 중소기업은 지역 내 검증기관의 부족으로 인해 검증 일정을 맞추지 못하거나, 컨설팅 비용이 대기업 대비 2~3배 이상 발생하는 이중 부담을 겪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결과적으로 지역 간·규모 간 제도 접근성 차이로 이어지며, 국가 탄소 감축 정책의 형평성을 해치고 있다.
실질적인 지원 방안과 제도 개선 방향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맞춤형 감축 실적 보고 지원 체계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로는 보고 시스템의 간소화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용 간편 보고 모드나, 특정 감축 유형(LED 교체, 인버터 설치 등)에 대한 자동화된 배출 감축 계산기를 제공하여, 전문지식이 없어도 쉽게 보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행정기관의 피드백 체계와 소통 방식을 전면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단순 반려가 아닌 구체적 수정 가이드와 예시를 제공하고, 재제출 시 우선 검토를 약속하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를 운영해야 한다. 이는 중소기업이 제도를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는 핵심이다.
셋째, 지역별 탄소 감축 컨설팅 센터 또는 중소기업 탄소관리 전담 인력 지원 사업을 통해 인력과 정보 격차를 줄여야 한다. 특히 탄소배출 감축 실적이 정부 보조금, 인센티브, 인증 등으로 연결되기 위해선, 감축 실적의 ‘행정적 문서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보고 역량 자체를 키우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향후에는 감축 실적 보고를 기후 정보 공시나 ESG 평가와 연계하여, 중소기업도 감축 노력을 시장 가치로 환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 연계가 요구된다. 이처럼 실적 보고의 행정 장벽을 허물고, 제도적 연계를 강화해야 중소기업도 탄소중립 체계의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