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기관(대학)의 탄소중립 전략과 배출권 제도 활용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은 더 이상 정부나 산업계만의 과제가 아니다. 이제는 교육기관, 특히 고등교육기관인 대학교와 대학 캠퍼스 역시 실질적인 탄소 감축 주체로서 주목받고 있다. 대학은 연구시설, 실험실, 대형 강의동, 기숙사, 식당, 냉난방 설비 등을 갖추고 있어 상당한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동반하며, 중소규모 도시 한 곳과 맞먹는 탄소 배출량을 기록하는 사례도 있다. 이처럼 탄소중립이 사회적·정책적 기준으로 작동하면서, 국내외 대학들은 에너지 효율화, 배출량 측정, 감축 인증, 탄소배출권 거래 참여 등 다방면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대학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는지, 배출권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대학의 탄소배출 특성과 감축의 필요성
대학은 일반 기업과 달리 교육, 연구, 생활이 결합된 복합 공간이다. 강의실, 실험실, 연구센터, 기숙사, 체육관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이 밀집돼 있으며, 24시간 냉난방, 전기 사용, 실험 기기 운영 등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가 크다. 특히 연구 중심 대학일수록 실험 장비 및 서버 운영 등으로 인해 탄소배출 강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국내 한 상위권 국립대학의 경우, 연간 전기 사용량만 3만MWh를 넘으며, 이는 중소도시의 연간 사용량에 맞먹는다. 이 같은 사용량은 온실가스 배출로 직결되며, 이에 따라 대학도 탄소중립 의무 이행 주체로 점차 포함되고 있다. 특히 국가의 제4차 온실가스 감축 계획(NDC)과 ESG 공공기관 평가가 강화되면서, 국립대학 및 공립대학을 중심으로 탄소배출 모니터링과 감축 전략 수립이 요구되고 있다.
일부 대학은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을 통해 ‘캠퍼스 배출량 인벤토리’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에너지 절감 프로젝트, 친환경 설계 기준 강화, 태양광 발전 설치 등 실제적 감축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은 더 이상 교육과 연구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탄소중립 실현의 실제 주체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외 대학의 탄소중립 전략 사례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의 대학들은 탄소중립 목표를 공식화하고, 구체적인 연도별 로드맵과 투자 계획을 수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교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하고, 건물 단열 강화, 친환경 자재 사용, 그린 리모델링, 재생에너지 전환 등을 포함한 실천 계획을 추진 중이다. 또한 캠퍼스 전기 사용량 전부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체하는 PPA 계약도 체결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는 학생과 교직원이 탄소 감축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탄소중립 펀드’를 조성했으며, 자발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 이와 같이 서구권 대학들은 단순 감축을 넘어, 참여 기반의 탄소중립 문화 조성을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대, 고려대, 포스텍, 부산대 등 일부 대학은 자체적인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해, 에너지 감축 목표, 친환경 리모델링, 온실가스 인벤토리 작성 등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대학은 정량적 목표 설정이나 외부 보고 기준, 배출권 제도 활용 측면에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는 이 전략이 ‘선택’이 아닌 ‘의무’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이 활용할 수 있는 배출권 제도 및 인증 방식
국내 배출권 제도(K-ETS)는 일정 규모 이상의 배출을 하는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대학은 민간 온실가스 감축 인증제도(VE: Voluntary Emission Reduction)를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 기관이다. VE 제도는 LED 교체, 고효율 보일러 설치, 태양광 발전 등 다양한 감축 활동을 인증받아, 해당 실적을 제3자에게 판매하거나 보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대학이 기숙사 전체 조명을 LED로 교체하고, 해당 감축량을 검증받아 인증을 완료하면, 이 실적은 VE 크레딧으로 전환된다. 이 크레딧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가진 기업에 판매가 가능하며, 대학은 이를 통해 감축 활동에 따른 재정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또한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은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을 위한 탄소중립 이행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은 여기에 참여하여 컨설팅, 데이터 관리 시스템 구축, 온실가스 배출량 자동화 계산 도구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대학도 일정 규모 이상이거나 국가 연구비를 수령하는 공공기관으로서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 의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므로, VE 활용 역량을 조기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의 탄소중립 확산을 위한 정책과 실행 과제
대학의 탄소중립 전략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과 캠퍼스 내부 실행력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정부는 공공대학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정량적 목표 설정 의무화와 실행 가이드라인 제공이 필요하다. 또한 대학 내 ‘탄소중립 전담부서’를 신설해, 에너지 관리, 건물 리모델링, 친환경 구매 등 부문별로 전략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학 내부적으로는 학내 구성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캠페인과 인센티브 구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실험실 단위의 에너지 절감 경쟁, 교직원 대상 탄소포인트제 도입, 온라인 수업 전환 시 탄소감축 효과 공유 등이 가능하다. 교육기관인 대학이 직접 탄소중립을 실천하면서, 탄소 감축 문화 자체를 학습하고 체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대학은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 생태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지역 기업, 시민단체와 연계한 지역 탄소중립 프로젝트를 공동 수행하고, 지역 배출권 시장에서 VE 거래를 수행하는 모델도 검토할 수 있다. 이처럼 탄소중립은 대학의 재정 부담이 아닌, 신뢰도와 ESG 평판을 높이는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