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설 산업의 탄소배출 구조와 개선 방향
건설 산업은 왜 탄소배출 문제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가?
대한민국에서 건설 산업은 단순히 도시를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핵심 축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 건물, 도로, 항만, 공장, 플랜트 등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인프라가 이 산업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고용 창출과 내수 진작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이 산업이 직면한 새로운 과제는 다름 아닌 ‘탄소배출 감축’이다.
건설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탄소배출량이 높은 업종 중 하나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며, 총 온실가스 배출의 약 11~13%가 건설 과정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자재 생산(시멘트, 철강 등), 장비 사용, 운송, 폐기물 처리 등 모든 단계에서 탄소가 발생하며, 특히 건설 장비의 화석연료 의존도와 시멘트의 공정 배출량은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방관할 수 없다. 정부의 탄소중립 기본계획에 따르면, 건설 부문 역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명확히 설정되었으며,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은 사전 온실가스 영향평가, 탄소배출 저감 계획서 제출 등이 의무화되고 있다. 이 글은 국내 건설 산업의 탄소배출 구조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산업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개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쓰였다.
건설 산업의 탄소배출 구조: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는가?
대한민국 건설 산업의 탄소배출은 자재, 장비, 공정, 폐기물의 네 가지 축에서 발생한다. 먼저 건설 자재 생산은 전체 배출량의 약 50% 이상을 차지한다. 대표적으로 시멘트는 석회석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화학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며, 철강은 고로 기반 제철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러한 자재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제조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건설 프로젝트에 직접 귀속된다.
다음은 장비 운용에서의 배출이다. 굴삭기, 불도저, 콘크리트 펌프카 등 대부분의 건설 중장비는 아직도 디젤 기반으로 운행된다. 특히 대형 현장에서는 하루 수십 리터의 경유가 사용되며, 이는 전기차보다 훨씬 높은 단위당 배출량을 기록한다. 전기 기반 장비가 일부 도입되고 있지만, 전력 공급 인프라 부족, 배터리 무게와 작업 지속 시간 한계 등으로 인해 보편화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세 번째는 건설 공정 중 간접적 배출이다. 자재의 운반, 임시 구조물 제작, 현장 조명과 난방, 보양재 사용 등 다양한 요소들이 에너지 소비를 유발하고 있다. 특히 고층건물의 경우 양중 설비 사용만으로도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며, 이 과정의 배출도 고려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폐기물 처리에서의 탄소 배출도 무시할 수 없다. 철거된 자재, 남은 콘크리트, 폐목재, 포장재 등은 대부분 매립 또는 소각 처리되며, 이 역시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일부는 재활용되기도 하지만, 현장 분리배출 시스템이 미비하거나 자재 재활용률이 낮을 경우에는 오히려 더 많은 탄소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건설 산업은 단일 구조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전체에서 복합적인 탄소배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업종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기술 도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건설 산업의 탄소배출 개선을 위한 현실적 전략
대한민국 건설 산업이 탄소배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지 기술을 바꾸는 것을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전략은 저탄소 자재 도입 확대다. 시멘트의 경우, 석회석 비율을 줄이고 산업 부산물을 혼합한 저탄소 시멘트를 사용하는 방식이 연구되고 있으며, 일부 대형 건설사는 이를 적용해 파일럿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또한 철강의 경우, 고로 기반이 아닌 전기로 기반의 친환경 철강 사용 확대가 중요하다. 국내 철강업계 역시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수소환원제철 공정 등을 연구 중이지만, 이 공정이 건설 현장까지 확대되기 위해선 건설사와 철강사 간 협력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
두 번째 전략은 전기 기반 건설 장비의 점진적 확대다. 소형 굴삭기, 전동 리프트 등은 이미 일부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특히 지자체 공공 발주 공사에서는 전기 장비 우선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모바일 충전 스테이션이나 건설 현장용 ESS(에너지저장장치) 설치 등 전력 인프라 구축도 병행되어야 한다.
세 번째 전략은 건설 폐기물의 체계적 분리·재활용 시스템 구축이다. 예를 들어, 철거 전 사전 해체 계획 수립을 통해 재활용 가능한 자재를 우선 분리하고, 이를 다시 유통시스템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미 일부 건설사는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기반으로 자재 활용도를 사전 시뮬레이션하며, 해체 단계까지 포함한 자재 순환 설계를 시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전략은 탄소배출량 측정과 투명한 보고 체계 구축이다. 실제로 현재 ESG 공시 기준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사는 Scope 1, 2, 3 배출량 보고 의무를 갖게 되며, 협력업체에게도 배출 데이터 제공을 요구하고 있다. 중소 건설업체 역시 거래 지속을 위해선 자체적인 배출량 측정과 감축 전략 수립이 필수가 되는 시점이다.
결론: 건설 산업의 탄소감축은 생존전략이자 기회다
건설 산업은 지금까지 성장 위주의 프레임에서 움직여왔다. 그러나 탄소중립 시대에는 환경성과 생산성이 동등하게 고려되는 산업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 변화는 위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기회다. 탄소배출 저감 기술, 친환경 자재, 폐기물 재활용, 탄소배출권 연계 사업 등 수많은 부가사업과 연계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이미 ESG 경영과 탄소배출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그 흐름은 협력사, 장비업체, 자재 공급사, 심지어 건설 현장의 외주 인력 관리 방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소 건설업체와 스타트업들도 이 흐름을 정확히 읽고, 기술 도입보다는 데이터 기반 감축 전략 설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탄소배출은 보이지 않지만, 사업을 위협할 수 있는 ‘숨어 있는 리스크’다. 동시에, 감축 실적은 보이지 않지만, 기업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숨어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둘을 구분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업이 살아남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