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담보대출, 가능할까?
탄소배출권도 자산인데, 담보로 쓸 수 없을까?
탄소배출권은 이제 단순히 규제 대응 수단을 넘어서, 기업이 보유한 실질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 실적이 정량화되고, 그에 따라 발급되는 배출권이 시장 거래가 가능한 재산적 가치를 가지면서, 기업 재무제표에도 자산으로 계상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배출권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나도 실무에서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우리는 배출권을 가지고 있고, 이걸 팔지 않고도 유동성을 확보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서는 탄소배출권을 직접 담보로 제공해 대출을 받는 구조는 가능성은 있으나 아직 제도화 단계에 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다. 실제로 몇몇 금융기관에서는 배출권을 간접적 담보 또는 평가자산의 일부로 활용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탄소배출권은 ‘자산’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회계 기준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업이 정부로부터 무상 할당받았든, 시장에서 유상으로 취득했든 탄소배출권은 일정 조건하에 무형자산 혹은 재고자산으로 회계처리된다. 따라서 배출권은 회계상으로는 분명히 보유 자산이며, 시장에서 실거래가가 존재하는 만큼 경제적 가치도 인정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자산이 금융기관 입장에서 “회수 가능성이 있는 담보 자산”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대출이 연체되었을 때 해당 자산을 확보해 현금화할 수 있는가? 이 점이 금융 담보로서의 핵심 판단 요소가 된다.
현재 담보로 인정되는 방식은 제한적이다
현 시점에서 국내에서 탄소배출권을 담보물로 활용한 정식 대출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제도적 기반, 법적 권리관계, 유동성 확보 문제 등이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기업금융이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구조에서 탄소배출권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평가 요소로 반영하는 방식은 이미 일부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제조업체가 대규모 감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 결과로 예상되는 탄소배출권 확보분을 미래 수익 또는 추가 담보 여력의 요소로 인정받는 구조다. 또한, 일부 국제기구나 탄소중립 금융을 지원하는 기관에서는 배출권을 기반으로 한 전용 대출이나 투자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다만 이들 역시 담보보다는 성과연계형(SLB, Sustainability-Linked Bond)에 더 가까운 구조다.
배출권 담보대출이 현실화되려면 필요한 조건들
탄소배출권을 본격적으로 담보 자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배출권의 소유권이 명확해야 한다. 정부가 할당한 배출권은 기업에 소유권이 있는지, 단순 사용권만 있는지 법적으로 명확히 정의돼야 금융권이 이를 자산으로 인정할 수 있다. 둘째, 시장 유동성이 충분해야 한다. 담보 자산은 회수가 가능해야 한다. 배출권 시장의 거래 규모가 작고, 가격이 불안정하면 금융기관 입장에서 담보가치로 평가하기 어렵다. 셋째, 정부나 기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배출권을 일정 조건하에 담보자산으로 인정하는 공공 보증제도나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도입된다면 담보 대출 활성화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수 있다.
해외에서는 시도되고 있을까?
국제적으로도 탄소배출권을 직접 담보로 활용한 대출 상품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기술적 기반과 제도 설계는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특히 탄소배출권을 NFT(Non-Fungible Token)나 디지털 자산 형태로 토큰화하여 디지털 담보로 설정하는 방식은 블록체인 기반 탄소 금융 분야에서 실제로 테스트 중이다. 일부 탄소크레딧 기반 스타트업들은 자체 플랫폼 내에서 배출권을 담보로 투자자금이나 대출을 연계하고 있으며, 이 구조가 향후 전통 금융기관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당장은 배출권을 담보로 직접 대출을 받기 어렵다고 해도, 기업은 탄소배출권을 활용한 금융 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ESG 채권을 발행할 때 배출권 확보 계획을 사용처로 명시하거나, 배출권 보유량을 자산으로 회계에 계상해 신용등급 평가에 반영받는 방식이다. 또는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면서 감축 실적을 미래 배출권으로 전환해 자산화할 수 있다는 계획을 수립하면, 금융기관이 이를 간접 담보처럼 평가할 수 있다.
결론: 탄소배출권 담보대출, 아직은 과도기지만 곧 현실이 된다
지금 당장은 탄소배출권을 직접 담보로 제공하고 현금 대출을 받는 구조가 일반화되어 있진 않다. 제도와 금융 인프라 모두 준비 중인 단계다. 하지만 탄소배출권이 점점 더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고, 탄소감축이 기업의 주요 경쟁력이 되면서 이 자산을 활용하려는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다. 앞으로 정부의 정책, 금융기관의 상품 개발, 그리고 시장의 거래 활성화가 동시에 맞물리면 탄소배출권은 단순한 규제 대응이 아닌, 실질적인 금융자산이자 담보 자산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부터라도 탄소배출권을 단순히 ‘보유’하는 데서 나아가 ‘활용’하고 ‘가치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