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감축 실적도 기부가 될 수 있을까?
기부라고 하면 대부분 현금, 물품, 재능을 떠올린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기후위기 대응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이제는 ‘탄소 감축’이라는 실천 자체도 기부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처음에 ‘탄소배출권을 기부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탄소배출권은 원래 기업들이 규제 대응을 위해 확보하거나 시장에 거래하기 위해 갖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배출권도 일종의 사회적 가치가 담긴 자산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업이나 개인이 자신이 보유한 배출권을 기부하거나, 감축 실적을 기부의 형태로 등록하고 사회단체나 NGO에 제공한다면 그건 금전적 가치와 함께 환경적·사회적 기여가 포함된 고유한 기부 방식이 될 수 있다.
탄소배출권을 기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탄소배출권은 기본적으로 이산화탄소 1톤을 줄였다는 인증서와 같다. 이걸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가, 원하면 다른 기업이나 기관에 매각할 수도 있고, 자체 감축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걸 ‘기부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쉽게 말해,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축 실적을 무상으로 양도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기업이 자발적 탄소 감축 활동으로 배출권 1,000톤을 확보했는데, 이를 시장에 팔지 않고 환경 단체, 기후 취약국, 혹은 공익 캠페인에 무상 기부한다면 그 실적은 해당 기관이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구조다.
단순히 이산화탄소를 줄였다는 수치를 넘어서, 기후 대응의 책임과 의지를 나눈다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 이는 곧 기업의 ESG 평가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반영될 수 있고, 사회적 신뢰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탄소배출권 기부의 실제 사례는 있을까?
국내에는 아직 이 개념이 낯설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탄소배출권 기부’를 활용한 다양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과 유럽의 일부 탄소 프로젝트 기업들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확보한 감축 실적을 NGO나 기후 정의 단체에 기부함으로써, 취약 국가의 탄소배출 감축 의무를 지원하거나 환경 보호 캠페인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일부 글로벌 브랜드들이 고객 참여형 탄소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면 일정 비율의 수익으로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고, 이를 탄소중립 실현이 어려운 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단순한 환경보호 활동을 넘어 브랜드 이미지 제고, ESG 실천, 소비자와의 신뢰 강화라는 복합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국내에서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탄소배출권을 활용한 기부가 제도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미 외부사업 방식으로 확보한 감축 실적은
거래 외에도 타 단체나 법인에 양도할 수 있는 규정이 존재한다. 따라서 기업이 자발적으로 확보한 KOC(Korea Offset Credit, 외부사업 감축실적)나 보유 중인 배출권 일부를 기부 목적으로 등록된 공익기관에 무상 제공하는 방식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또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탄소중립 프로그램, 탄소상쇄제도에 민간 기업이 감축 실적을 기부하면 이를 공공 배출량 상쇄나 기후 복지 분야에 사용할 수 있는 구조도 설계가 가능하다. 중요한 건, 이런 기부 행위가 정량적으로 인정받고, 보고 가능한 형태로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기부 기업도 세제 혜택, ESG 인증, 사회적 평판 제고 같은 실질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기부와 탄소시장, 충돌은 없을까?
물론 일부에서는 “탄소배출권을 시장에서 거래해야지, 기부하면 시장 왜곡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작동할 수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은 대부분 규제 대응용이고, 기부용 배출권은 대체로 자발적 감축 실적(VOC, voluntary offset credit)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 둘은 본질적으로 목적과 사용처가 다르기 때문에 기부 활동이 시장을 흔들거나 교란할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탄소 감축에 대한 참여를 유도하고,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비영리 분야와 기업의 협업 가능성을 넓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향후에는 탄소배출권 기부가 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기업이 기후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배출권을 특정 지역 사회에 기부하거나, 사회적기업이 감축 실적을 기부받아 공익 프로젝트에 활용하는 방식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배출권 기부 인증 플랫폼이 생긴다면, 기업과 개인이 손쉽게 실적을 등록하고, 기부처는 이를 추적 및 활용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기반의 기부 생태계도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히면, 단순한 '감축 실적 보고'를 넘어서 기후 정의와 사회적 환원을 연결하는 고급 ESG 전략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탄소배출권은 기부의 새로운 형태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기부는 주로 ‘현금’이나 ‘물품’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감축된 탄소량’도 사회적 가치를 가진 기부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탄소배출권은 그 자체로 환경에 대한 책임감,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기업이나 기관이 배출권을 기부한다는 건,
단순한 세제 혜택을 넘어서 탄소중립 사회를 위한 선도적 실천이자,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행동이다. 앞으로 이 개념이 제도화되고 사례가 축적되면 ‘탄소배출권 기부’는 ESG 경영의 핵심 수단이자,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연대 방식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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