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전 세계 산업과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된다. 그 중심에는 각국이 도입한 탄소배출권 제도가 있다. 하지만 제도의 기본 취지는 같아도, 운영 방식과 규제 강도, 그리고 시장 구조는 나라별로 상당히 다르다. 독일은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EU ETS)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강력한 규제와 투명한 시장 운영을 바탕으로 제도를 굴려간다. 반면 한국은 자국의 산업 구조와 경제 상황을 고려해 조금 더 유연하고 점진적인 접근을 선택한다. 이런 차이는 기업이 세우는 감축 전략, 배출권 가격 변동, 나아가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글에서는 독일과 한국의 탄소배출권 제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법적 기반과 시장 운영, 가격 형성, 그리고 감축 성과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본다. 또한 두 나라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시사점도 함께 정리한다.
제도 운영 구조와 법적 기반의 차이
독일은 EU ETS의 일원으로서, 모든 회원국이 공유하는 규칙과 감축 목표를 따른다. 이 제도는 2005년부터 시행되어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탄소시장이 되었고, 매년 배출 상한이 조금씩 줄어드는 구조를 가진다. 상한이 줄어들면 당연히 배출권 공급량도 줄어들어, 시간이 갈수록 기업이 느끼는 감축 압박이 커진다.
독일은 이런 EU 차원의 규제를 자국 법률에 그대로 반영하여 시행하며, 규정을 어길 경우 매우 엄격한 처벌을 한다. 초과 배출량 1톤당 수십 유로의 벌금이 부과되고, 다음 해에는 그 초과분만큼 감축 목표가 더해진다. 이런 강력한 제재 덕분에 시장 참여자들은 제도를 신뢰하고, 계획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한국은 2015년부터 독자적인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한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초기에는 산업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무상 할당 비율이 높았다. 또한 제도 설계에서 국내 산업 구조를 고려해 적용 범위와 대상 업종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왔다. 정부가 직접 거래 시장을 관리하면서 필요에 따라 할당량 조정, 예비분 배분, 거래 제한 등을 실시하는데, 이런 유연성은 제도 초기 안착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감축 압박을 약하게 만든다는 평가도 있다.
배출권 가격 형성과 시장 투명성
EU ETS에 속한 독일의 배출권 가격은 유럽 전역에서 형성되는 단일 시장 가격이다. 참여 주체가 많고 거래량이 방대해,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매일 거래 가격과 거래량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에너지 기업부터 철강, 시멘트 업계, 금융기관, 투자펀드까지 다양한 참여자가 있다. 이 덕분에 가격 변동성이 크긴 하지만, 시장 신호가 명확하게 반영되어 기업이 전략을 세우는 데 유용하다.
한국의 배출권은 KAU(Korea Allowance Unit)라는 단일 상품으로 환경부가 운영하는 거래소에서만 거래된다. 참여 기업 수가 제한적이고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가격 변동 폭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반대로 유동성 부족 문제가 있다. 거래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개되지 않고, 일정 주기 후에만 확인할 수 있어 시장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규모 배출권 매입·매도가 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기업 부담과 감축 성과 비교
독일 기업들은 높은 배출권 가격과 매년 강화되는 감축 목표를 감당하기 위해 에너지 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전환, 수소 기술 도입, 탄소포집저장(CCS)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압박이 오히려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장기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국 기업들은 초기 무상 할당 덕분에 적응 기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최근 들어 유상 할당 비중이 늘어나면서 부담이 커진다. 특히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산업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단기간에 감축 실적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일부 업종에서는 탄소 감축보다 생산 유지와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국제 무역에서 ‘탄소국경세’ 같은 규제가 확대되면, 감축 투자가 곧 기업 생존과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시사점과 향후 개선 방향
독일 제도는 강력한 규제와 투명한 시장 운영을 통해 참여자 신뢰를 높였고,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감축에 투자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가격 변동성이 크고, 에너지 집약 산업의 부담이 커지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 제도는 유연한 운영과 점진적인 강화로 산업계 충격을 줄였지만, 거래 시장의 유동성과 투명성 부족, 국제 시장과의 연계성 미흡이라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한국은 EU ETS 수준의 정보 공개와 거래 구조 개선, 그리고 국제 탄소시장 참여 확대를 통해 제도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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