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ETS와 한국 K-ETS는 어떻게 다르고, 왜 중요한가?
나는 탄소배출권 관련 자료를 찾을 때마다 ‘한국은 왜 이렇게 복잡하지?’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러다 유럽 ETS(EU Emissions Trading System)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 제도가 가진 단순함, 일관성, 시장 기반 철학이 기업 입장에서 왜 매력적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유럽과 한국의 탄소배출권 제도는 모두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대표적인 시장 기반 규제다. 하지만 그 작동 방식, 가격 구조, 대상 범위, 정책 철학은 상당히 다르다. 이 차이는 곧 국내 기업의 대응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글에서는 유럽 ETS와 한국 K-ETS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그 속에서 기업이 지금 준비해야 할 전략은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기본 구조: 누구에게 얼마나 배출권을 주는가?
EU ETS는 2005년 세계 최초로 출범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로, 현재 유럽연합 27개국을 포함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도 포함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대부분의 배출권을 경매 방식으로 할당하며, 무상 할당은 매우 제한적이다.
반면, 한국의 K-ETS는 2015년에 시작됐으며, 여전히 배출권의 80% 이상을 무상으로 배정하고 있다. 중소기업이나 수출기업 보호를 위한 이유가 크지만, 이로 인해 시장 내 탄소 가격이 낮게 유지되고, 감축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유럽은 ‘시장 경쟁 원리’를 강조하고, 한국은 ‘정책 보호주의’ 성향이 강하다.
가격 차이와 시장 신뢰도
EU ETS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80100유로(약 1215만 원) 수준으로, 배출권 거래가 활발하며 가격 변동도 크다. 시장 참여자들은 탄소배출을 하나의 ‘비용’이자 ‘투자 수단’으로 인식한다.
반면 한국 K-ETS의 가격은 평균 톤당 3만~4만 원 수준으로, 거래량 자체도 매우 제한적이다. 기업이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배출권이 ‘형식적 제도’에 머무는 경우도 많다.
또한 유럽은 시장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경우, 시장 안정 메커니즘을 통해 적극적으로 공급량을 조절하는 반면, 한국은 제도 조정이 느리고 후속 조치가 늦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적용 대상과 기업의 감축 압박
유럽 ETS는 에너지, 제조, 항공 등 광범위한 산업을 포괄하며, 적용 기업 수는 수천 곳에 달한다. 무엇보다도 중소기업을 제외하지 않고, 연간 일정 배출량 이상이면 예외 없이 제도에 편입된다.
한국 K-ETS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만 대상이며, 사실상 대기업 중심의 시스템이다. 중소기업은 제도 참여가 거의 없으며, 자발적 감축도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이 차이는 기업 입장에서 ‘탄소 배출 = 진짜 비용’인지, 아니면 행정 절차인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된다.
정책 철학과 민간 참여의 차이
유럽은 배출권 시장을 민간 중심으로 설계하고 있다. 국가는 감시자 역할에 집중하고, 시장은 스스로 조정하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어, 유럽 기업들은 탄소 배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배출권을 사전에 확보하거나, 시장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거래한다.
반면, 한국은 국가가 할당도, 기준도, 조정도 직접 관여하는 구조다. 민간의 자율성과 시장 창의력이 제한되며, 이로 인해 배출권 시장이 ‘비활성화’되어 있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이 주목해야 할 핵심 차이 요약
정리하자면, 유럽 ETS는 경매 중심, 고가 정책, 강력한 감축 압박, 민간 중심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 K-ETS는 무상 할당 비중이 높고, 가격도 낮으며, 제도 운영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또한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시스템이고, 유럽은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감축을 유도한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국내 기업이 해외 수출을 준비하거나, ESG 평가를 받을 때 “국제 기준에 얼마나 맞춰져 있는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기업이 지금 준비해야 할 3가지 전략
유럽 기준에 맞춘 내부 감축 보고 체계 구축
→ 유럽 고객사나 투자처가 요구하는 탄소 정보 수준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
→ Scope 1, 2는 물론 Scope 3(간접 배출)까지 기록하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배출권 가격 상승 시나리오에 대한 리스크 관리
→ 유럽 수준으로 탄소 가격이 오른다면 제조업체의 원가 구조에 큰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 미리 고효율 설비 전환, 배출권 확보 전략이 요구된다.
국내 정책 변화 감지 및 대응 속도 강화
→ 한국 정부도 장기적으로는 무상 할당 축소와 시장 자율화로 방향을 잡고 있다.
→ 정책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내부 시뮬레이션을 자주 돌려야 한다.
결론: 유럽 ETS를 모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된다
유럽 ETS와 한국 K-ETS의 차이는 단순한 제도의 차이가 아니다. 이는 국제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이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현실이다. 지금까지 한국 중심의 제도만 익숙했던 기업은 이제 글로벌 기준을 이해하고, 탄소 감축 전략과 비용 구조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탄소배출은 더 이상 행정 보고용 수치가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 수익성, 생존력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유럽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다.
'2. 탄소배출권 제도 & 법령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탄소배출권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상관관계 (2) | 2025.08.15 |
---|---|
2025년 탄소배출권 가격, 왜 오르나? 가격 변동 요인과 시장 전망 정리 (2) | 2025.08.12 |
2025년 이후 개편될 가능성이 있는 배출권 할당 기준 시나리오 분석 (0) | 2025.07.26 |
K-ETS와 민간 온실가스 감축 인증제도의 제도적 충돌 문제 (1) | 2025.07.25 |
기후 관련 정보 공시 의무화와 배출권 보고의 차이 (0) | 2025.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