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배출권 없는 국가들의 대응 전략: 수입국 탄소세(CBAM) 사례 중심

tigerview 2025. 7. 22. 09:45

전 세계가 탄소중립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가운데, 탄소배출권 거래제(ETS)를 시행하지 않는 국가들이 국제무역 질서에서 점차 불이익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본격 도입한 수입국 탄소세, 즉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는 탄소규제가 없는 국가들의 제품에 대해 간접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로,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배출권 제도가 없는 국가들은 이 새로운 무역 장벽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탄소회피 전략, 기술혁신 투자, 제도 도입 준비 등 다양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CBAM의 도입 배경과 구조를 간략히 설명하고, 배출권 제도가 없는 국가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배출권 수입국 탄소세

 

CBAM의 도입 배경과 기본 구조

유럽연합은 자국 내 산업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탄소배출권 거래제(ETS)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고배출 산업에 탄소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제가 있을 경우, 기업들은 탄소규제가 느슨하거나 없는 국가로 생산을 이전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이를 '탄소 누출(Carbon Leakage)'이라고 한다. CBAM은 바로 이 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CBAM의 핵심은 수입 제품이 EU 내 제품과 동일한 탄소 비용을 부담하도록 만들겠다는 데 있다. 현재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등 6개 품목을 대상으로 도입되었으며, 향후 점진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수출기업은 제품을 수출할 때 자국 내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증명하고, 해당 배출량만큼의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EU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이는 간접적인 탄소 관세 역할을 수행하며, 탄소 규제가 없는 국가에는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배출권 제도가 없는 국가들이 겪는 실질적 위기

탄소배출권 제도가 없는 국가들은 CBAM 도입으로 인해 수출 경쟁력을 위협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터키, 러시아 등이다. 이들 국가는 탄소 규제 시스템이 미비하거나 ETS 자체가 도입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산업이 고배출 중심이다. CBAM이 본격 시행되면 이들 국가의 기업은 직접적인 탄소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며, 이는 가격 경쟁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인도의 철강 수출 기업은 CBAM 시행에 따라 수출 제품당 약 15~20%의 가격 인상 요인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이들 국가는 아직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시스템조차 구축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탄소 배출량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는 곧 기술·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며, 해당 국가의 산업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편, 이들 국가 중 일부는 CBAM을 불공정 무역 조치로 간주하고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를 고려하고 있지만, EU는 이를 정당한 환경 보호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어 국제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배출권 제도가 없는 국가들은 탄소중립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면 점점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CBAM 대응을 위한 각국의 전략적 움직임

이러한 위기 속에서 배출권 없는 국가들도 다양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첫째, 일부 국가는 ETS 도입을 준비하거나 시범 운영에 돌입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는 2023년부터 발전 부문을 대상으로 한 시범 배출권 거래제를 시작했으며, 인도 역시 자국 ETS 도입을 위한 기본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CBAM을 무력화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자국 기업의 탄소배출량 측정 및 보고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고 있다. 탄소 감축 기술이 당장 어렵더라도, 배출량을 투명하게 측정·보고할 수 있다면 CBAM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2024년부터 산업별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프로젝트를 본격화했고, 터키는 EU와 기술 협약을 체결해 감축 검증 시스템을 수입하고 있다.


셋째, 일부 국가는 CBAM에 직접 대응하는 정치적 협상 카드를 꺼내고 있다. 아세안 일부 국가들은 EU에 대해 “개도국에 대한 차별적 조치”라고 주장하며, 환경 기술 이전 및 금융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CBAM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 전략으로 평가된다.

 

한국과 기업의 CBAM 대응 방향에 주는 시사점

CBAM은 단지 유럽의 환경 규제 정책을 넘어, 전 세계 무역 질서와 산업 전략을 재편하는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 한국은 이미 K-ETS를 도입하고 있지만, 일부 수출 중소기업은 여전히 배출량 측정 시스템이 미흡하거나, CBAM 대응 경험이 없어 실제 부담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협력업체나 원자재 공급처가 배출권 제도가 없는 국가에 위치해 있는 경우, 간접적인 비용 전가가 불가피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다음과 같은 다층적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중소·중견 수출기업을 위한 탄소배출 데이터화 지원이 필요하다. 실측 기반의 탄소정보를 수출 제품에 명확히 연동할 수 있어야 CBAM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둘째, EU와의 환경 기술 협력 및 제도 연계 강화를 통해 한국의 ETS와 CBAM의 정합성을 높이는 외교적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내 수출기업은 단기적인 수출 실적보다 공급망 전반의 탄소관리 체계 강화를 경영 전략의 중심에 둬야 한다. CBAM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기후 중심 산업 구조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강제 수단이며, 그 흐름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기업만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